일단 접기로 했으나, 마음은 그래도 편하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서 구글에서 "자폐증 환자와 일하기"를 검색해 보았으나, 도움이 될 만한 검색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이게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외국에서는 자폐증 환자들을 소프트웨어 개발/테스트에 활용한다는 얘기만 있었을 뿐이고, 자폐증에 대해서 설명해 놓은 페이지들도 구체적으로 자폐증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어쨌거나, 조별 과제는 계속 진행이 되었고, 여기도 사람이 모인 곳인 만큼, 그리고, 일을 안하는 개인에 대한 특별한 제재수단이 없다보니, 조별과제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났다. 일 안하는 건 기본이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그렇다보니, 차츰 이 사람의 장점도 드러났다. 먼저, "5분간 시도 후 되면 실행, 안되면 포기"가 장점으로 다가왔다. 남들처럼 일을 잡고 있다가 "사실 이거 안했어요." 하며 빵꾸내는 일은 없었다. 일 시키고 나서 5분뒤에 가서 진행하고 있나만 체크하면 수행 여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5분안에 빵꾸날지 안날지 판가름이 나니까 좋았다. 허울뿐이라도 관리자가 되고 나니, 명확하다는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두번째로,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질문을 하진 않았다.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 "나 이거 알고 있어요", "나 이만큼 했어요" 를 티내기 위해 조원들을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누구처럼 하나의 질문을 모든 조원에게 1번씩 돌아가면서 혼자 있을 때 물어본다던가?, 또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다른 팀원과 논쟁을 하면 시끄럽다고 니가 석사면 다냐 그냥 시키는대로 하자 뭐 그런 일들) 다른일(출력, 서버접속등)로 다른 조원들의 시간을 뺐은 적은 있어도, 조별과제 진도를 나가는데 방해를 한 적은 없었다. 어차피, 일에 관심은 없었지만, 관심이 없는게 우리에게는 더 도움이 되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와 일하라고 하면 절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우리나라같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인구의 약 2~3% 정도 자폐증 환자가 있다고들 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자폐증 환자들을 만난적은 없다. 그럼 이 사람들은 도데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걸까? 





by normalist 2014. 2. 12. 14:56




먼저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자폐증 환자로 의심받는)의 진단서 같은 걸 본 적은 없으니까. 다만, 자폐아를 가르쳐 본 어느 동료가 자폐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정상인으로 안 보이는 행동들이 보였다. 혼자서 컴퓨터 화면을 보며 웃는다던가, 담배피면서 뿐만 아니라 항상 혼자 얘기하는 것들, 음악이 나오면 주위 상황에 상관없이 리듬을 탔고,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를 하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질 못했다. 잠깐 예를 들어보면,
 누군가 "우리동네에 어쩌구 저쩌구..." 라고 하면,
  "우리 히어로즈가 어쩌구 저쩌구" 라고 대답을 했다.
99%의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가 문장을 말하면 그 중에서 자신이 아는 단어를 찾고, 그 단어에 대해 자신이 아는 얘기를 했다. 문장이 무슨 뜻인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어느 과정에 합격했다. 사상 초유의 지원자 전원합격(나중에 알고 보니까 해당 기관에선 많이 한 거 같지만 나에겐 처음이었다.)이라는 혜택(?)을 받고 들어갔을 때만 해도,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3달 과정으로 첫 달은 교육이었고, 두 달은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그는 교육과정중 두각을 나타내는 일은 없었고, 교육이 끝났을 때만 해도 나는 그의 존재를 잘 몰랐다. 그냥 아침에 일찍 오는 사람, 담배 많이 피는 사람이었다.
 
첫 달 교육이 끝나고 두 달 프로젝트를 함께할 그룹이 발표되었고, (운명의 장난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의 의도대로, 차라리 랜덤이었으면 화도 안났을텐데) 그와 나는 한 조에 속해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주위에서 여러 걱정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안하면 빼고 가지 뭐" 라고 쿨하게 생각하며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같은 그룹이 되고 나서 보니까 이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위에 적은대로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조차 되질 않았다. 회의의 주제를 모르니, 아이디어 회의를 같이 할 수도 없었고, 그 동안 갈 곳이 없던 이 사람에 대한 모든 불만(담배 냄새가 너무 많이 나요, 사무실 비품을 자기것인양 써요 등등)들이 모두 나에게 넘어왔다. (내가 조장이었으니까) 게다가, 조별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다보니, 조원들도 나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이 사람 너무하는거 아니냐?", "그래도 월급받고 다니는 곳인데 이래도 되냐?" 등등. 이렇다 보니 나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장은 허울뿐인 자리였을뿐, 내가 이 사람을 제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을 시키면 5분간 시도해보고, 되겠다 싶으면 하고, 안되겠다 싶으면 그냥 놀았다. 자기가 한 일의 quality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신경쓰지 않았다. 일이야 진행이 되건 말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했다. 이러다 보니 "야 이 개새끼야~ 일을 이따위로 하면 어떻해" 라고 수십번도 더 외치고 싶었으나, 참았다. 평소에 자폐증 환자를 본 적이 없으니 "이 새끼 연기하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화를 해보려고 해도 언제나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니, 대화가 진행이 될 리 없었다. 나쁜 사람 같진 않았지만, 자폐증이라 그런지 이기적이었고, 공중도덕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결정적으로 화이트 보드에 쓴 회의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옮겨보라고 하였으나, 옮기지를 못했다. 물론 이 사람은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도저히 받아들일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여기서부터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었다.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이 프로젝트에서 그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다음 내용은 2부로 이어집니다.



by normalist 2014. 2. 10. 00:43
| 1 |